Chan Ho Park spoke with media about throwing out the ceremonial first pitch on Opening Day of the Seoul Series, his career with the Los Angeles Dodgers an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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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John Long Time fuki from ABC 7 eyewitness news Los Angeles This is a monumental day for South Korea for Major League Baseball in the soul series When you made debut in 1994 did you know would have much howes 지금 오늘 아침부터 일어나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오히려 제가

시를 던 하나 던지려고 하는 그런 계획이 한 경기를 다 던지는 것처 을 갖게 되는데 어 아마도 너무나 뜻깊은 그런 하루가 될 거 같고 어 30년 전에는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전혀 상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루하루가 사실 쉽지 않고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특히 마이너리그 있을 때부터 정말 그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이렇게 헤쳐 나가야

됐었는데 그런 일들이 저한테 는 굉장히 어려웠지만 지금 이렇게 도해 보면 그 일들을 통해서 내가 너무나 성장해 있었고 또 그 제가 성장하는 그런 어 결실들이 한국 야구의 발전과 또 30년 후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예 생겨나는 그러 어떠한 역사가 또 다시 만들어지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감명깊게 생각하고 사실이 글러브도 예 30년 전에 제가 어

오프닝 내에 썼던 그 글로브를 박물관에서 지금 갖고 왔거든 의 있는 그 시구에 함께 같이 예 공 던지지만 글로벌 사용을 하려고 갖고 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뜻깊은 그런 하루가 될 것 [음악] 같습니다 30년 전에는 제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그다음해 다음인 95년도 1995년도에 히데오 선수가 와서 또다시 그 동양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예 그래서 아마도 어 당시에는 저조차도 예 노무 선수가 열어놓은 그 문으로 다시 들어가야 되는 그러한 아 그러한 그 어떤한 어 기회였어요 제가 마이너 리에서 다시 도전해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와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올라와서 어 노무 선수와 제가 같이 다저스 어 팀메이트로 활약을 하면서 동양에 저에게 문은 더 활짝 열렸고

더 단단히 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뒤로 이제 더 많은 선수들이 뭐 달비 씨도 있고 이지루 선수도 있고 또 우리 유현진 선수도 있고 김하성 선수도 있고 추신수 선수 이렇게 더 많은 동양의 선수들이 또 대만에서도 그렇게 또 어 홍코 뭐 팽 그렇게 대만에서도 오는 선수들이 메저 또 활약을 하고 돌아갔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어 동양 선수를 보면은 아 노무 히데오의 나무가 정말 튼튼하게 자랐구나 또 박찬호의 나무가 굉장히 튼튼하게 자랐구나 그 남의 나무들에서 열리는 그런 열매들이 정말 많은 그런 메이저 리그를 이끌어 가는 그런 기회가 되고 앞으로도 더 동양의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 리그를 꿈꾸면서 더 크게 더 훌륭하게 그렇게 성장했으면 그렇게 진출하고 도전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TV 도쿄입니다 저기 박찬우 선수 노모 선수를 시작으로 이제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이제 메이저에서 특히 이제 다저스에서 활약을 하고 계시는데 다저스 만에 타구 단과의 차별되는 점이 혹시 있을까요 다시 한번 다저스가 다른 메이저 리그 9단과의 차별되는 점 이제 다저스를 통해서 많은 이제 선수들이 또 이제 메이저 진출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 좀 다른 단하고 는 있는지가 그 뭐 다저스는 첫 뭐 ENG 다저스 팀은 어 제가 처음으로 저를 통해서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고 어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첫사랑 한국야구의 한국 국민들에게 첫사랑이라는 그런 히 IMF 우리 한국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근데 스포츠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고 또 용기도 줄 수 있었고

그랬는데 그게 파란 유니폼이었다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은 파란 유니폼 립은 한국 선수가 던지는 모습에 하루하루 기대를 하고 응원을 하고 또 승리했을 때는 같이 기뻐하고 또 잘 안 됐을 때는 또 같이 어 힘들어했던 그런 시간들을 뒤로 그렇게 어떻게 보면 야구를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 삶의 한 부분이 됐던 그런 칼라인 다저스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추억이 됩니다 지금의 50대 60대 70대 어 사람들은 굉장히 다저스를 굉장히 가슴깊이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거든요 지금의 젊은 그러 야구 팬들 한국 팬들은 지금 다양하게 춘신 선수가 텍사스에서 활약을 했고 또 현진 선수가 다시 다저스에서 또 활약도 하고 트트 왔고 다양한 그런 한국 선수들이 다양한 그런 팀에서 활약을 했기 때문에 이젠

어떠한 특정한 선수 팀이 한국 야구에 한국 어 야구 팬들에게 전달되는 그런 모습들이 아닌 어 오히려 더 다양한 메이저 리그 전체가 한국에는 더 깊이 자리 잡혔나 잡혔지 않나 그렇게 생각들면서 얼마 전에 야구 캠프를 하면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좋아하는 팀들이 이야기 할 때도 굉 다양한 팀들을 응원을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으로 봤을 때는 정말 아이 또

한국에 있는 그런 야구 팬들은 메이저 리그를 응원하는 다양한 그런 팀들을 응원하는 그런 모입니다 그리고 다저스 팀은 첫 사람과 같죠 그리고라는 로스앤젤레스는 그런 도시는 어 저의 뭐 고향가 같은 그런 곳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어 방금 박호 위원께서 다저스 는 첫사랑이라고 말씀하셨고 지금 이제 몸 담고 계신 곳은 어떻게 보면 샌 디에고랑 현재

이제 아내라고 비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첫사랑과 아내가 오늘 경계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 좀 어떤 감정이 드실 것 같은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늘 경기가 어떤 팀이 이겨야 된다라는 그런 건 없습니다 다만 오늘 경기와 내일 경기가 한국에서 역사적인 그런 경기로 펼쳐지는만큼 정말 어 기준에 있는 월드 시리즈에서 정말 어 최고의 그런 경기를 보여 준

것처럼이 오프닝 경기 오늘 경기죠 그리고 내일 경기 또한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메이저 리그 승부 경기의 승부로 그런 좋은 멋진 경기로 치워줬으면 좋겠어요 예네 안녕하십니까 박찬호 위원님 그 오늘 선발인 다르비슈 선수가 향후 아시아 승 124승을 뛰 가도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향우 뭐 다르비 선수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는지 그런 부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네 기록이라는 것은요 아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예 그래서 제가 2007년도에 다시 이제 마이너리그 시즌을 어 보냈어야 됐는데 그때 어 여기까진가라는 저의 커리어는 여기까진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근데 노무 선수를 다시 보면서 다시 한번 용기 를 갖고 한번 더 도전해 보자라는 그런 마음으로

노무 선수의 기록이 오히려 저를 다시 한번 제기하 큰 어 목표를 선정하고 용기를 주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갖고 있는 124승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이제 깨져야 되죠 당연히 깨 져야지 그게 발전의 어떠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거고 아마 다비 선수가 꼭 하길 바라고 또 어떠한 동양의 선수가 할 텐데 그 기록은 깨지는

그런 기록은 또 다른 그런 다음 세대들 테 또 다른 좋은 그런 목표와 도전할 수 있는 그러한 탑이 되길 바라는 그런 마음입니다네 오늘 그 글러브에 대해서 좀 상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지 그거 언제부터 쓰신 글러브 좀이 글러브를 끼고 좀 기억에 남는 경기들이 있다면 좀 어떻게 회상하시는 그다음에 좀이 를 끼고 시구를 하실

텐데 좀 그 글러브를 보면서 좀 어떤 감정이 드시는지 뭐 그런 거 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한국에서 어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어이 제가 쓰던 물건 특히 이제 제가 쓸 수 있는 물건들은 유니폼이나 글러브까지 도구까지 모든 거를 다 선배들이 쓰던 거를 물려 받아야지 우리가 또 쓸 수 있는 그러한 형태였어요 그리고 우리가

쓰던 물건을 또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우리는 졸업하고 이러한 아 그러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 뭔가 내가 쓰던 물건을 내가 같이 있게 소장하고 이런 거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사실 그랬는데 미국에 처음 갔는데 첫 스트라이크 아웃을 이제 제가 잡고 나서 사실 그 경기에 데뷔 전에 제가 두 점을 허용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조금 많이 좀 부끄럽고 예 굉장히

떨리는 마음으로 던졌기 때문에 좀 많이 아쉬운 그런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이제 덕아웃으로 마운드에서 덕아웃으로 다시 들어가는 이을 이닝을 마치고 이제 마운드 덕아웃으로 들어갔는데 라소다 감독이 마 덕아웃 앞에까지 나와서 저를 허그도 해 주고 그다음해 볼을 하나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보를 왜 주나 하고 그냥 받았어요 그때는 이제 통역이 야구장

안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통역이 없는 상태에서 항상 야구장 안에서 뭔가를 해야 되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고 어 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볼을 주길래 그냥 받아서 클로버스 들어가서 아까 점수 줬던 두 점에 대해서 굉장히 좀 어 아 안 좋은 마음으로 어 좀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나중에이 볼에 대해서 라소다 감독이 다시 설명을 해 주더라고요 이게 역사에 남는 공이 될 거라고 왜 그러냐면 첫 한국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 스트라이크 아웃을 만들었던 공이었다 그러면서 그거를 안 저기 뭐야 저한테 이해를 시켜 주고 그러면서 그 공이 저한테는 수중한 보물이 된 거예요 그다음부터 모든 물건들을 다 제가 쓰던 물건들을

소장하는 특히 제가 던지고 나서 이제 승리 투수가 되고 나서는 마지막에 어 던진 공을 제가 이젠 어 모으는 그러한 습관을 생겼거든요 그 때로는 이제 마무리 투수가 자기 세이브 공을 승리 팀의 승리 공이기 때문에 자기도 갖고 싶고 저도 갖고 싶고 그러기 때문에 좀 뒤를 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공을 갖고

싶어서데 그런 공들을 124개 다 모았거든요 그게 지금 저희 고향에 있는 어 그 어 박물관에 시에서 만들어 놓은 박물관에 이제 기증이 되어 있는데 그러한 습관 뭔가 모을 수 있는 내가 갖고 있는 그래서 쓰면서도 그게 굉장히 소중했고 그리고 다 쓰고 나서도 그거를 관리하는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예 어

노력도 많이 해야 되는 그러한 저기가 됐었는데이 글로브는 이제 처음에 제가 대비해서 썼는데 당시에 이젠 어 잘 모르고 제 손가락이 움직임에 따라서 타자가 어떤 공을 던지는지 어 알 것 같다고 그래서 제가 당시에는 이제 미국에 처음 가서 직구와 슬라이더 밖에 못 던졌는데 이제 체인지업도 배우면서 뭐 여러 가지 이제 각정 구조도면서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그런 걸 보고 링스에서 요것들을 이젠 어 새로 만들어 줬어요 예 그래서 손가락을 이제 그래서 보기에는 조금 흉해 보이지만 그래도 굉장히 가치 있고 이게 30년 후에 오늘 다시 쓰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기쁩니다 이거를 잘 간직하고 김성 선수가 샌디에 이제 계약을 할 때 그전에 제가 김성 선수한테 많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든지

샌디에고에인할 수 있록 어 그리고 나서 이제 김한 선수가 센 대역에 계약을 하고 나니까 굉장히 책임감이 많이 쓰더라고요 또 어떻게 보면은 삼촌이자 어 보호자 입장처럼 그렇게 많은 애정과 그 어 이렇게 관심을 쏟았는데 첫해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어려움을 겪고 지난해에는 정말 많은 그런 성장 속에서 또 다른 역사를 한국 선수로서

역사를 만들어 놓는 골든 글로벌을 수상하게 되고 수상 받게 되고 그러면서 김한 선수의 그러한 성장과정이 굉장히 그냥 야구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그런 어 성숙과 내면의 그런 인성조차 단단해지는 그런 모습을 굉장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흐뭇 타고요 그리고 이렇게 이번 이런 메이저 리그의 어 메이저 리그 경기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김한성 선수가 스포

스타로서의 그 한 부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런 모습 얼마 전에 이제 바드리 선수들이 다 같이 회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한성 선수가 어 그 스피치도 하고 하고 선수들을 다 같이 모을 수 있는 그랬고 용기를 주고 어 뭔가 어 모티베이션을 할 수 있는 그러한 멘트도 하는 그런 모습 보고 굉장히 흐뭇했습니다 30년 전에

저는 말도 못했지만 감히 흉내내지도 못했습니다 팀의 리더 역할을 하고 선수들을 위해서 제가 뭔가 멘트를 한다는 거는 있을 수도 없었는데 지금의 선수들이 특히 오다니 선수 얼마 전에 이제 작년이 작년에 1본 팀을 모아놓고 결승전 앞두고 이런 이야기 하는 모습 보고 모든 그런 야구 선수들이 굉장히 많은 걸 배웠는데 이번에 김성 선수의 그런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그런 성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굉장히 선배로서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블룸버그 통신 최 기자입니다 어 한국 야구가 30년 전에 비해서 지금은 경기력이 어떻다고 보시는지 또 위상이 어다 오시는지 그리고 또 앞으로 팬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고 야구라는 걸 함께 즐기기 위해서 한국 야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 제가 질문에 까먹은게 있으면 다시 질문해 주세요 지금 여러 가지를 질문한 거 같은데 30년 조과 지금의 한국 야구에 비교한다면 너무나 많은 그런 발전을 했죠 예 특히 제 생각에는 메이저 리그에 어떠한 문이 열리고 그리고 이젠 어린 아이들이 메이저 리그를 경기를 본 라는 그 자체가 벌써 어 수준이 높아지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뭐 서울도 아니고 작은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 메이저 리그라는 걸 상상을 못 했어요 사실 예 그리고 볼 수도 없었고 메이저 리그 선수의 사진도 볼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자랐는데 처음에 미국에 갈 때는 어 국가대표 됐을 때 미국 팀 선수처럼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공을 던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마이너 리그가 뭔지 메이저

리그가 뭔지도 자체도 잘 모 상태에서 미국에 그냥 갔거든요 가서 이제 그거를 경험서 하 경험을 하면서 하나하나 이렇게 배워가는 그런 과정이었고 지금의 선수들은 벌써 마이너 리그가 뭔지 메이저 리그가 뭔지 가면 이제 마이너 리그 같은데 어떻게 하면은 메이저 리그로 올 수 있는지 그리고 박찬우 선수는 어떻게했는지 유현진 선수는 어떻게 했는지 김하성 최진수 최지만 다 이런

선수들은 가서 어떻게 겪었는지 또 다저스뿐만 아니라 지금 뭐 텍사스 모든 팀들을 다 이제 선수들이 어린 아이들이 그 팀들의 색깔과 유니폼을 아주 눈에 익은 상태에서 가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또 성공하는데 더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가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그런 경기들이 디테일하게 예 한국 야구 꿈나무들에게 전달이 됐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어 과거에는 박창 야구만 볼 수 있었지만 지금 이제 다양한 그런 선수들의 활력을 보면서 더 다양한 그런 팬들이 야구팬 들 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시작하면서 또 메이저리그를 꿈을 갖고 또 그 속에서는 또 한국 야구를 또 이어가는 이끌어가는 그런 멋지고 훌륭한 선수들이 배출됐으며 하는 바람입니다

12 Comments

  1. 4:35 reporter asking about chan ho facing discrimination and chan ho completely avoiding the question 😂😅😅😅

  2. Chan Ho Park’s nickname in South Korea is “Too-much-talker” Once he starts talking, you can’t stop him…. For hours……. 😂😂

  3. Chan Ho Park is one of the forgotten greats of Dodger history. Those mid-90s pitching staffs were loaded with great arms like Park, Hideo Nomo and Ismael Valdez. Lots of talent on those teams that never seemed to win up to their potential. I remember them fondly though. #BigBlueWreckingCrew

  4. It's funny because Chan Ho at one point says he understands English better than Korean. IIRC he left Korea to join the Dodgers at age 21 and since then I think he's spent more time in the USA than Korea.

    His Korean is perfect but his accent/dialect is similar to how Koreans used to speak in the 80s. Sounds like Korean immigrants in the USA that came during that period. It's intere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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